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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는/보이지 않는 날

도피와 안식


불편해.

하지만 렌즈는 생각보다 빨리 벗겨냈고, 먹는 약도 비타민 정도.

안약은 여전히. 병원도 아직 더 가야하고. 


아픈 것도 시린 것도 없는데 조금 굴곡이 있어 그런지 편안한 시야는 아니다.

시력검사판에서 1.0, 1.2 정도는 뭔지 알겠는데 흐리게 보이는 정도.

원래 시력이 양쪽 1.4로 눈이 나빠 고생한 기억이 없어서 그냥 좀 답답하다.


모니터를 보면 처음엔 초점이 잘 안 맞아 어지러운데 보고있으니 괜찮다.

내일은 하루종일 어쩔 수 없이 컴퓨터 붙잡고 있어야 하는데 연습삼아 오랜만에 일기.

아, 그렇게 오랜만은 아닌 것 같네. 


오늘은 언니도 쉬는 날이라 낮에 미친듯이 과제하고 둘이 카페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돌체라떼, 언니가 좋아하는 그린티프라푸치노를 흡입하고 마트로.

단호박카레를 만들 재료와 레몬청 담글 재료를 사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동물병원에 들려 우리집 멍멍이 머리방울을 샀다. 엄청 사랑스러운 것들로.


집에 와서는 열심히 만들기 시작. 

단호박카레는 엄청 맛있었다. 

짭짤한 카레랑 달짝지근한 단호박이 아주 환상적.

며칠 한 솥 끓인 카레만 먹겠지만 행복 할 예정이다.

레몬청은 일주일 뒤에 맛을 보고 일단은. 


사실 오늘 머리를 좀 자르려고 했는데 미용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왔다.

머리가 엄청 길었다. 그리고 엄청 상했고, 엄청 지 멋대로, 야생식물마냥 방치 중.

반 년을 자연휴식년제처럼 푹 쉬게 놔뒀는데 어째 머릿결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을까.

그래서 얼른 상한 부분을 자르고 끝을 가볍게 칠까, 한다.


오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고 울었다.

요즘 신작이 나온다고 계속 어느 방송사에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방영해준다.

얼마전에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서 대사까지 따라하며 울었다.

일본의 옛이야기나 타부, 주술, 민간신앙에 흥미가 있어서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데

언젠가 레포트에서 엄청 열정적이게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언급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 (귀)신의 힘은 아주 많은 콘텐츠에서 발휘되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사실 행방불명과 神隠し는 뜻도 뉘앙스도 굉장히 다른데,

이 카미카쿠시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가 너무 많지만 길어질 것 같아 나중에.


전문가가 되고 싶으면 오타쿠가 되어라, 라는 말이 생각난다.

우리 교수님들 중 특히 몇몇 분은 수업 하실 땐 늘 청년과 같은 눈빛을 하고 계신다.

그런 어른이 되고싶다. 

내가 이 공부로 돈을 벌어먹을 순 없어도 파고 들 수 있는 세계가 있었으면 한다.

시간이 지나도 그 세계에서는 언제나 열정적인 스물몇의 나일 수 있었으면.

젊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 반짝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뭐가 또 이렇게 길어졌을까.

문제다, 문제.

결국 왜 제목을 저렇게 했는지는 까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