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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되는/보이지 않는 날

괜찮아, 삶이야.

 

 

그랬다. 어제(28일)는 마치 누군가가 나를 음모라도 한 것 같은 하루였다면

오늘(29일)은 잇몸이 무너질 듯 피곤해도 기분이 좋을 수 있는 날이 되었지.

 

물론 내가 어제의 기억을 끌고 와 오늘을 더 괴롭힐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공강 때엔 서점에서 어제를 보상 받으려는 듯 신나게 시집 쇼핑을 하는데,

옆에서 시집을 고르시던 연세가 꽤 있으신 분과 시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분이 혹시 괜찮으면 커피를 사겠다고 하셔셔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시와 시인, 종교과 역사에 관한 광범위한 소재로 거의 한 시간이 넘게 쉼 없이 대화를.

재밌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많이 들어서 유쾌하고 영양가있는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대화가 너무 즐거웠다고 인사 후 헤어지고, 또 책을 보는데 젊은 여자분이 말을 걸어와서

'오늘 무슨 날인가?', '나 쉽게 생겼나?' 하는 생각을 했던 하루.

 

사실 이런 우연도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바쁜 서로의 일상에서 수 많은 사람 중 오늘 내가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이나,

전파를 타고 그 수 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람이나

대단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그래서 과소비의 목록을 살펴보자면,

김언 시인의 '소설을 쓰자'

이병률 시인의 '바람의 사생활'

이성복 시인의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에다가 더하기 한 권.

 

이성복 시인의 시를 너무 좋아해서 평소에도 어렵지만 찾아 읽는데,

이렇게 예전 시를 읽으면 한자를 찾아보는 일련의 과정도 너무 행복하다.

특히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는 아주 오래 좋아하던 시라,

그 시를 보고 산 시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를 타이핑 하는 것도 그렇지만, 직접 손으로 따라쓰는 것을 좋아한다.

만년필에 잉크를 넣어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만년필을 어렵게 찾았다.-

또 이것저것 따라 적어야지. 할 건 많은데 기분이 좋다.

 

그런데 내 잇몸은 정말, 곧 무너질 것 처럼 아프다.

심신이 흐물흐물.

이러다 아누비스가 내 손을 꼭 잡고 데려가도, 나는.

싫다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겠지.

내 심장의 무게는 얼마나 나가요?

 

네? 비만이라구요? 그럴리가.

(암전)

 

암전과 암전으로 끝을 맞이하는 극과 같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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