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되는/보이지 않는 날

위기감, 월요일.

벤츄레타 2014. 7. 7. 04:11


01.

 방학을 한 대학생에게. 그것도 백수건달(엄마가 항상 말하는)에게 월요일은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은 알 수 없는 위기감과 긴장감에 평소보다 더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 오늘의 고민은 자격증이다. 일본어 자격증을 거의 5년전에 취득하고, 그 이후로는 전무했기 때문에 막상 하려니 겁이 나서. 당시엔 실력이 쑥쑥 는다는 것이 느껴졌는데 어째서 지금은 엄청 퇴보했다. 그래서 이번 겨울을 목표로 어떻게 분발하려고 마음을 먹는 중. 




02.

 그리고 토익. 이 나이 먹도록 토익 한 번 안쳐보고 뭐했나, 뭐하긴. 놀았지. 다행이라면 다행인게 오히려 토익은 겁이 나고 그렇지는 않은거. 뻔치좋게 칠 수 있을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너무 열심히 하는 시험은 긴장해서 말아먹는 경우가 많아서 최대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하는게 중요한데, 그걸 알면서도 잘 안된다. 일본어도 재밌게 생각하면서 해야지. 처음에 그 마음가짐으로.




03.

 금요일에는 친구가 휴가를 나왔다. 그래서 아주 작은 영화관이라고 하기도 소박한 상영관에서 이브 생 로랑을 봤다. 취향이나 관심사가 비슷해서 꽤 즐거웠다. 영화는 오히려 인물에 초점이 되어서 좋았고, 프랑스 영화답게 너무 아름다운 언어와 풍경을 보여줬고, 여전히 이해하기 힘든 섹스와 폭력들이... 그리고 조용한 카페에 갔다가, 칵테일을 마셨지. 물론 나는 별로 마시지 않고. 여전히 잇몸에서 치아가 들떠있는 기분이다. 확실히 충치의 아픔과 다른 기분나쁨이다. 이게 오래가면 결국 사랑니를 발치해야겠지. 골치아프네.




04.

 태풍이 온다. 너구리라니, 라면 중에서 너구리가 제일 좋은데. 오늘도 먹었다. 너구리.




05.

 토요일엔 뭘 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고, 일요일에는 책장정리를 했다. 언니와 내 전공책의 자리를 바꾸는 것도 엄청 힘들었는데, 그게 언니의 전공서적은 실로 어마어마한 무게와 크기를 자랑하고 있어서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왔다. 비소설, 시, 소설, 만화책, 전공, 문제집, 앨범, 잡지 등으로 확실하게 나눴다. 그런데 책장에 빈 공간이 별로 없어서 벌써 걱정. 언니 전공책을 좀 팔까...?




06.

 카드캡터 체리를 1편부터 다시보고있다. 어렸을 때 몇개의 애니메이션 방송사에서 방영할 때마다 언니랑 엄청 열심히 볼만큼 좋아했었는데 운 좋게 완결까지의 애니메이션을 구하게 되어서 행복하다! 스토리가 그저 명랑하고 밝지만은 않아서 지금 봐도 재밌다. 나는 샤오랑이라는 이름도 되게 좋아했었는데, 작은 호랑이라는 뜻의. 이번 여름방학은 체리와 함께! 엔딩멘트같네. 동심으로 돌아간 느낌도 들고 좋다. 어른이 되어도 다를게 없다. 나는 여전히 유치한 감동과 재미가 있는 만화가 좋고, 아이돌에 웃고 울고, 공부하기 싫어하고, 엄마한테 안기고 싶은. 달라진 건 싫어하는 것도 할 수는 있게 된 것, 잠이 오지 않는 밤을 혼자서 나는 것, 뛰어놀지 않는 것, 건강을 걱정하는 것, 사랑하는 것을 알게 된 것.




07.

 대청소를 하면서 발견했는데 내 방에 참 어울리지 않게 꽤나 큰 봉제인형이 3개가 있는데(그리고 작은 2개와) 그 인형들은 다 한 친구에게 받은 선물이다. 하나는 불면증인 나을 위한 잠자는 양 모양의 라벤더향이 나는 작은 쿠션같은 인형, 하나는 리락쿠마에 빠져있던 나를 위한 안대를 쓴 리락쿠마인형, 하나는 팽귄 움짤 모으기에 빠져있던 나를 위한 꽤 큰 아기 팽귄인형. 성인이 지나서도 이런 봉제인형을 선물로 주다니, 그 친구도 참 귀엽다. 그리고 작은 2개의 인형은 특히나 아끼는데 하나는 내가 가장 의지하는 친구가 내가 요괴친구가 가지고 싶다는 말에 선물해준 파란괴물인형이고, 하나는 우리 멍멍이가 꾸준히 가지고 노는 하얀 곰돌이 인형.  

 



08.

 오늘 우리 멍멍이 목욕했는데 하루하루 예쁨과 귀여움과 사랑스러움 그 외에 모든 좋고 예쁜 것들이 증식하는 느낌이다. 뭐랄까, 항상 나는 새롭게 태어나는 기분이 든다. 늘 놀랄만큼 사랑을 느낀다. 보드라운 털에 내 얼굴을 부비는게 좋다. 작은 발바닥에 뽀뽀하고, 귀여운 코를 만지고 싶어! 같은 집에 있으면서도 순간순간 보고싶어 코부터 엉덩이까지 뽀뽀를 퍼부어줘야한다. 사랑하는 나의, 사랑스런 나의...! 나는 네가 남기고 갈 그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사랑하겠다는 다짐으로 살아. 미래는 나를 무너뜨리겠지만 보다 단단한 나를 세울거라고 믿어 의심하지 않아. 나의 구원이자 선물, 우리 오래오래 건강하자 애기야. 아 뽀쪽뽀쪽해주고싶어... 끌어안고싶어ㅠㅠ 끙...




09.

 아이를 낳는다면 과잉보호에 팔불출이 될 것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여전히 아이들은 무섭고 어색하다. 그래도 언니가 아이를 낳으면 좋은 이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종종한다. 물론 딩크족이 될 수도 있겠지만. 먼 미래라고 해도 내 결혼생활은 잘 상상이 가지 않는다. 가끔 서툴게 끓인 된장찌게를 함께 먹거나, 아담한 둘만의 집을 함께 꾸미는 것이 아주 로맨틱하다는 생각은 하지만 뭔가 아주 먼 일처럼 느껴진다. 나이는 그렇게 아주 멀지도 않았는데...(암전)




10.

 결혼을 해야할 이유는 없지만 그래도 영원히 나와 죽음을 바라보며 함께할 내 편이 있다는 것이 큰 안정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타인을 통해 인정받고, 공식적인 서류의 절차와 의식이 행해지면서 더 단단해지겠지. 단순히 사랑하는 사이를 넘어선 의무와 책임을 더한 사이. 엄마 아빠를 보면 그게 참 부럽다. 아무리 다투고 눈에 밟히는 버릇에 여전히 토달아도 서로의 마지막에 서로가 있을거라는 사실을 전혀 의심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11.

 얼마 전 엄마가 혼자 가게에 있는데 커피가게 사장님이 엄마가 좋아하는 음료를 가져와서 주더랬다. 엄마는 서비스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실 아빠가 카페에서 더울 때 엄마한테 과일쥬스 한 잔 만들어 주라고 했다는 것. 가끔 아빠의 소소한 로맨틱에 내가 다 감동한다. 




12.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이다. 그래서 나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 먹고싶은게 너무 많다. 큰일이다. 




13.

 늦게 자는게 다른건 몰라도 배고파서 힘들다. 얼른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