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목요일의 기록.
폭풍같은 어제가 지났다. 시험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오히려 조금 걱정하던 마지막 시험은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 천근만근인 몸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쿼터파운드치즈버거를 먹다 남겼다. 세상에, 누가 내 입맛을 도둑질했나. 그렇게 냠냠 먹고 우리는 또 즐겁게 마트에서 사야할 것들을 사고, 엄마가 커피를 사줘서 새로생긴 상가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커피도 맛있고, 인테리어도 참 잘 되어있는 카페. 사장님이 아주 적극적인 카페여서 우리는 이야기가 끊길 때마다 서로를 보고 조금 웃었다. 친구한테 줄 게 있어서 집으로 왔더니 언니가 마침 꽃꽂이를 하고 있었다. 꽉꽉 담은 레몬청을 주고, 작은 수국 송이를 주고, 언니가 레몬에이드를 만들어줘서 그걸 먹는데 엄마가 와서 희한한 질문들로 친구를 곤란하게 만들었지.
저녁엔 일찍 잠들어도 되는데, 며칠 그랬다고 피곤해도 잠이 오지 않았다. 평소에도 조금 수면장애를 겪고 있어 한 번 뒤틀리면 몸이 부들부들 으러져도 쉽게 잠들지 못한다. 새벽엔 그렇게 구역질을 했다. 꼭 엄청 술을 많이 마신 다음 날 컨디션 같았다. '속이 안 좋아', '어지러워', '배 아파', '눈에 뭐 들어간 것 같아' 이게 내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아닐까. 아, 그리고 '추워'도.
오늘은 조금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아니 사실은 많이 충격적인. 이제는 그런 시대가 되었나, 싶어서 나도 마음 단단히 먹어야지, 했던 일이지만 그냥 시험 끝나고 터져줘서 고맙네. 이게 참 그렇다. 정의 내리기 힘든 관계 중 하나는 팬과 연예인이 아닐까. 비지니스 상으로는 일종의 재화와 소비자인데 돈 보다 마음을 더 쓰게 되니까. 그게 아깝지도 않았고 같이 무언가를 향해서 열심히 쌓아가고 있다는 그 기분이 뿌듯하고 진심으로 기쁘기도 해서 시작하면 쉽게 놓을 수 없는 감정인데, 이때까지 흔히 팬질이라는 것을 오래 해오면서도 한 번도 내가 가졌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그냥 가끔은 훨훨 날아가버리는 느낌이 들어서.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
내가 얼마나 많은 시를 읽으며 울었는지 당연히 너희는 모르겠지만, 무겁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언제나 새로 태어날 생명을 받아 안는 마음으로 너희를 생각한다. 최대한 단정하고 깨끗하고 진지하고도 사랑스럽게. 신달자 시인의 시처럼 같이 울기 위해서 너를 사랑한 건 아니지만, 내가 너희의 어둠이 되고 싶고, 안개꽃이 되고 싶고, 바닥에 깔린 천이 되고 싶었다는 것을 알고 있니. 다 그 예쁘게 웃는 얼굴을 위해서. 결국 나는 그 간격에 빠져 죽는다고 해도, 그렇다고 해도. 나의 빛, 나의 장미, 나의 구원자였기에 좋은 건 다 너희 앞에 물어다 놓고 싶었다. 몰라도 좋으니, 그저 언제나 찬란하기를 바라.
은행을 좀 가야겠다. 병원 보험금이 통장으로 입금되었다. 아주 소소하게. 나는 그거 장학금인 줄 알았는데, 어쩐지 적더라니. 우울은 어떻게 물리치나. 아무것도 먹고싶지가 않다. 오늘은 샐러드 외엔 먹은게 없어 이대로 아무것도 안 먹었다가는 내일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얼른 뭐라도 입에 넣어야지. 그리고 저녁에는 공부를 해야겠다. 그래, 내일 시험이 하나 남기는 했으니까.
지친다. 책상에 수국이 곱게 자리잡고 있다. 수국의 꽃말은 쳐녀의 꿈, 변심.
오랜만에 일기다운 일기를 써보겠다고 생각했는데 겨우 이런 내용들. 어지러워라.